forever, Hero

브라질 축구 천재, 네이마르 이야기

Aruarian 2024. 8. 18. 13:50

정열의 나라 브라질 그중에서도 축구에 열정적으로 진심인 이곳에서 태어난 한 소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네이마르는 5살 때부터 친구들과 축구하는 걸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물론 진짜 축구장은 아니었고 샌들을 양쪽에 놓아 골대를 만들고 놀았던 동네 길거리가 그에겐 아주 재미있는 축구장이었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동네 길거리 축구 특성상 축구보단 풋살에 많이 가까웠을 텐데요. 훗날 네이마르는 이때 했던 길거리 축구가 자신의 성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7살이 되던 해부터는 투미아루, 포르투게사 산티스타, 그레메탈이라는 지역 유소년 팀에서 정식으로 축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11살이 됐을 무렵 축구 황제 펠레를 배출한 브라질 명문 구단 산토스 유스팀에 입단해 계속해서 실력을 갈고 닦았습니다. 2009년 어렸을 때 축구밖에 몰랐던 17살 브라질 소녀는 꿈에 그리던 프로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네이마르는 데뷔하자마자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며 자신의 주가를 계속해서 올려갔습니다. 당시 일부 축구 팬들은 신인 네이마르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 유럽에서 검증되지 않아 평가하긴 이르다는 의견 때문이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별명이 아닌 팩트를 말해보겠습니다. 브라질리거 발롱도르 5위 이러면 좀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확 달라 보이지 않나요? 브라질 리그에서 뛰던 선수가 당당히 발롱도르 상위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당시 네이마르의 위상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네이마르 하면 2013 컴페더레이션스 컵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대회야말로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쇼케이스 였죠 그리고 이 대회 이후 네이마르가 거품이라는 소리가 전부 종식되지는 않았지만 많이 사라지게 됐습니다. 

조별 예선 3경기에서 모두 MVP를 받았으며 당시 피파 랭킹 1위의 스페인을 상대로도 센세이셔널한 활약을 보여주며 3대0으로 완파하게 되죠. 대회 우승은 물론 골든볼까지 수상하면서 전 세계 네이마르라는 이름을 제대로 각인시켜 버렸습니다. 

다시 돌아가 산투스 시절 네이마르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죠. 천재적인 볼 컨트롤 폭발적인 드리블 전부 네이마르를 표현하는 능력입니다. 또 골은 얼마나 넣었을까요? 225경기 136골 골수가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다고 느끼시는 분들이 있으실 겁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네이마르의 드리블에 대한 이견은 전혀 없으나 득점력만 놓고 보면 의견이 갈리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골수를 전부 차치하고 산투스 시절의 골 영양가는 정말 높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캄피오나2 파울리 스타에서 3연속 우승을 하는 동안에 치러진 3번의 결승전에서 각각 2골 1골 4골을 넣었습니다. 


또한 2010년에는 브라질의 FA컵이라고 불리는 코파도 브라질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놓고 득점왕을 차지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죠. 그리고 1년 후 2011년에는 남미의 챔피언스 리그라고 불리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도 결승전 결승골을 넣으며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 우승은 단순한 우승이 아니라 펠레가 활약하던 1963년 이후 무려 48년 만에 우승한 터라 그 감동은 배가 되었습니다.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으로 인해 남미 대륙의 슈퍼컵인 레코파 수다메리카나에 출전한 네이마르는 여기서도 결승골을 기록하며 우승에 성공했고, 이로 인해 산토스 시절 총 6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또한 푸스카스 상을 받은 적도 있었는데요. 플라멩구를 상대로 환상적인 드리블을 보여주며 골을 성공해 2011 푸스카스상을 받게 됩니다. 
이로 인해 네이마르는 유럽으로 가기 전부터 이미 전 세계에서 관심을 받는 스타가 되어있었습니다. 

네이마르는 웨스트엠유나이티드 첼시 레알 마드리드 등 유럽 피클럽들의 끊임없는 러브콜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2013년까지 산토스에 남아있긴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네이마르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는 세계선이 있었다는 걸 알고 계시나요? 

여기서 잠깐 다시 네이마르가 14살이 되던 때로 되돌아가 보겠습니다. 산토스 유소년 팀에서 뛰고 있긴 했지만, 레알 마드리드에서 뛸 기회를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네이마르는 마드리드에서 꿈만 같은 19일을 보냈고 짧은 시간 동안 청소년 팀에서 27골을 터뜨려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아직 어렸던 네이마르는 타지 생활이 많이 버거웠던 것 같습니다. 또한 네이마르는 고국에 있는 친구들을 그리워했고 그의 부모님은 이를 받아들여 브라질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에이전트 와그너 리베이로는 레알 마드리드와 계약을 취소하기 위해 네이마르의 몸값으로 6만 유로를 요구했고 레알 마드리드는 당연히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네이마르는 다시 브라질로 돌아갔습니다. 시간이 흘러 2013년 5월 26일 문명의 장난처럼 네이마르는 레알 마드리드의 라이벌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됩니다. 

2013년 컴페더레이션 스컵을 우승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축구 팬들은 네이마르에 대한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유럽 리그에서 증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네이마르는 드디어 그 의문을 종식시킬 도전의 시간이 다가왔죠 하지만 유럽 리그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언론에서 엄청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거에 비해 첫 시즌 퍼포먼스는 그냥 준수한 정도였죠 오히려 같은 시기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가리스 베르와 비교를 당하며 판정패라는 의견이 주로 이루게 됩니다. 

하지만 다음 시즌인 14 15시즌부터는 적응기가 완전 끝난 모습을 보여주며 51경기 39골이라는 경이로운 활약을 선보이기 시작합니다. 덤으로 이 시기에 최고의 공격라인 MSN 라인이 완성됩니다. 또한 유럽 진출 2년 만에 트래블을 달성하며 자신에게 남아있던 유럽 리그 증명에 대한 의문을 말끔히 종식시켰습니다. 그렇게 본인 커리어의 최고 전성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네이마르에게 잊을 수 없는 단 1경기를 꼽으라면 저는 주저없이 1617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전을 바라겠습니다. 파리 생제르망과의 16강 1차전에서 4대0으로 대패한 가운데 바르셀로나는 8강으로 가기 위해 최소 5점 차 이상으로 승리해야만 했죠. 하지만 현실은 잔인하게도 챔피언스 리그 역사상 1차전에서 4골 차로 진 팀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한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네이마르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차전을 앞두고 SNS에 이런 글을 올리죠 가능성은 1프로라도 우리에겐 99프로의 믿음이 있다. 

그렇게 시작된 2차전 결국 기적은 없는 걸까요? 총합 스코어 3대5로 끌려가는 바르셀로나는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려면 3점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남은 정규 시간은 고작 2분 남짓 그때부터 기적은 시작됐습니다. 후반 43분 프리킥 찬스에서 네이마르가 직접 골을 성공시키며 4대5로 따라갔고 추가시간 1분에 얻은 PK도 네이마르가 성공시키며 5대5까지 추격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원정 다득점에서 밀리는 상황이라 한 골이 더 필요했던 바르셀로나는 94분 네이마르가 박스 안쪽으로 공을 전달했고 쇄도하던 세르지 로베르토가 득점에 성공하며 기적 같은 역전을 만들어냈습니다. 기적의 기적을 뛰어넘는 최고의 역전곡으로 네이마르 본인은 이 경기를 축구 인생에 있어 최고의 순간으로 뽑았습니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이 시즌을 끝으로 네이마르의 바르셀로나 스토리는 끝이 나게 됩니다. 


186경기 105골 그리고 발롱도르 3위 바르셀로나에서 뛰는 네 시즌 동안 메시 호날두와 같이 신계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네이마르가 바르셀로나를 떠나고 싶어 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정확한 사실은 네이마르 본인만 알고 있겠지만, 여러 가지의 이유를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아까 말했던 파리와의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 이후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리오넬 메시에게 집중된 점이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점은 자신이 바르셀로나에 계속 남더라도 메시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 없겠다고 느끼는 계기가 됐을 수도 있죠. 이와 같은 상황은 네이마르가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욕구를 더 강하게 만들었을 가능성도 이 욕구는 발롱도르와도 깊게 연관되어 있겠죠. 또 다른 이유를 추측해보자면 이미 이 팀에서는 트래블이라는 대업을 잃었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가 이적한 이유는 아직 모릅니다. 오직 네이마르 본인만 알고 있죠. 그렇게 2017년 8월 4일 역대 최고의 종료로 자신이 직전에 무너뜨린 그 팀으로 이적을 하게 됩니다. 약 3100억 원 액수가 워낙 커서 아직까지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리그 수준은 확실히 라리가보단 떨어지긴 해도 빅클럽에 뒤처지지 않는 자금력이 있기 때문에 주인공을 원하는 네이마르는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개인 퍼포먼스적으로는 훌륭했습니다. 173경기 118골 산토스 바르셀로나에 이어 파리에서도 100골 이상을 넣어버린 이 기록은 호마리우 호날두 네이마르 이 3명만 가지고 있는 기록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네이마르 커리어에 있어서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퍼포먼스 적으론 훌륭했다고 쳐도 일단 부상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부상으로 인해 결장하는 날이 파리로 이적한 시점부터 눈에 띄게 많아진 점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인에게 중요했던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도 실패해 발롱도르 순위권에서 점점 멀어졌습니다. 그렇게 21세기 브라질 최고의 테크니션은 신계의 문턱을 결국 넘지 못했습니다. 

 

이후 네이마르는 알 힐랄로 이적을 하지만 또 장기 부상을 당해버렸습니다. 하지만 네이마르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해왔던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으로 언제나 그랬 듯 다시 그라운드를 누빌 것입니다.